본문 바로가기

음악.예술

사운드 vs 이미지 - '대립' 혹은 '공존'

(좌)알타미라 동굴벽화 (대략 18,000년 전) | (우)구석기 시대에 제작된 피리 (대략 35,000년 전) : 현재까지 발견된 고고학적 사료에 근거하면, 인류에게 있어서 청각예술은 시각예술보다 그 기원이 오래되었을거라 추측된다

 

 

얼마전 독일에서 3만 5000년 전에 독수리 뼈로 제작된 피리가 발견되었다. 3만 5천년 전이면 대략 구석기 시대 중기 때다. 이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인간이 직접 제작한 악기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편, 가장 오래된 회화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로, 대략 18,0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그린 암벽화다. 이러한 고고학적인 사료들에 근거하여, 인류문화의 역사에서 미술보다 음악이 먼저 등장했다는 가설이 최근 학자들 사이에서 그 신빙성을 얻어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회화나 조각같은 시각예술의 유물들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으로서 잘만 보전되면 계속 후대사람들에 의해 감상되어질 수 있는 반면에, 피리와 같은 악기들은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 아닌 단지 청각예술의 수단으로서 제작되어진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구석기 시대에 제작된 피리의 발견을 통해 무엇이 혹은 어떤 형태의 음악이 그당시 그 피리에 의해 연주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렇듯, 시각예술과는 달리 청각예술은 무형의 형태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그들의 계승자들을 통해 대대로 그들의 음악을 보전하거나 악보를 통해 전승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소리의 기록이 가능한 매체의 탄생은 불과 한세기 전의 일이고, 에디슨의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까지의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휘발성' 공연 예술의 일부로서 존재해왔다. 따라서, 다양한 매체에 의해 소리의 저장이 가능해진 오늘날에도, 청각예술은 시각예술과는 달리 한정된 장소에서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라이브 형태의 무대예술에 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다.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음반판매와는 별개로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직접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행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반면에, 시각예술은 라이브 공연 보다는 이미 완성된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Exhibition) 형태를 더 선호해왔다. 결국, 소리는 매체(CD, 카세트 테입 등)를 통해서 고정된 형태로만(녹음된 결과물 등) 감상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는 그 예술적 가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역사의 오랜기간 동안 청각예술이 연주자와 관객들 사이의 실시간적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발전해왔기 때문이며, 이러한 의사소통방식은 결과적으로 '소리가 만들어지는 현장감'을 청각예술의 한 구성요소로서 자리잡게 하였다.

 

 

그렇다면, 청각예술의 현장감과 시각예술의 그것이 서로 융합되면 연주자는 어떠한 형태로 관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청각예술의 현장감은 연주자의 연주를 통해 실시간적으로 관객들과 연주자 사이에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서 형성된다. 반면에, 전통적으로 시각예술에 있어서의 현장감이란 이미 완성된 작품과 관람객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형태다. 이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작가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있어서 청각예술이 시각예술보다 더 일찍 등장했다는 가정을 전제하에, 청각예술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시각예술의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보다 더 원시적이다. 그 이유는, 청각예술은 작품의 복제성과 확산성에 있어서 시각예술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청각예술에 있어서 작품의 현장감은 똑같이 복사해내기가 매우 어려우며, 그리고 반드시 관객들과 제한된 공간내에서만 실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규정된 공간과 시간내에서만 확산될 수 있다. 반면에, 시각예술의 작품들은 '물리적인 베끼기'가 본질적으로 가능하며, 작품의 감상을 위해 실시간적으로 작가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시간적, 공간적인 제약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음악과 시각예술이 융합된 형태의 작품에서, 관객들은 소리의 실시간적 커뮤니케이션과 비쥬얼 아트의 '일방적 보여주기'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능동적으로 연주자의 소리를 감상함과 동시에, 현재 눈앞에서 저절로 펼쳐지는 비쥬얼의 세계로 수동적으로 몰입하면서, 결국 소리에 대한 무한한 청각적 상상력을 지금 현재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이나 이미지의 세계로 국한시키게 된다. 따라서, 청각과 시각이 융합된 형태의 예술작품에서는 소리의 추상적 의미가 이미지의 구체적인 '실체'에 의해 '시각화'된다. 이렇게 시각화된 소리는 다시 이미지에 청각적 현장감을 불어넣어, 이제 관객들은 실시간적으로 그 이미지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청각예술의 현장감이 이미지로 전이되어 더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탈바꿈되는 것이다.